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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는 남북통일의 리트머스종이다
[변진일 칼럼] 탈북사건으로 '일본 망명 1호'인 민홍구를 떠올렸다
 
변진일 (코리아리포트 편집장) 기사입력  2011/09/22 [20:48]
▲  탈북자들이 타고 온 배    

지난 주말 야마구치현에 갔다 왔다. 야마구치시와 우베시에서 각각 강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탈북자 9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일본으로 온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관심이 컸던지라 강연에서는 이 문제를 언급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처음으로 탈북자를 취재한 것은, 1983년 일본 배가 북한에 나포돼, 타고 있던 선장과 기관장이 스파이 혐의로 7년이나 구속됐던 '제18후지산마루 호 사건'의 발단이 된 '민홍구 병사 망명 사건' 때였다.
 
황해에 닿아있는 남포에 정박해 있던 일본 어선 '제18후지산마루' 호에 북한 병사가 은밀히 숨어들어 일본에 망명한, 이른바 '일본망명 1호'였기 때문이다.
 
그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할 때까지 "한국에 가서 같은 처지인 김현희에게 프로포즈할 생각이다"라고 토로했을 때 정말이지 아연실색했다. 김현희는 대한항공 폭파사건을 일으킨 전 공작원이다.
 
그는, 고독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일본 생활풍토와 습관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때문인지 여러 차례 나쁜 짓을 저질렀고, 유치장을 왔다갔다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던 중, 슬프게도 우쓰노미야 중앙 경찰서 유치장의 독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가 일본에 망명한 지 23년째되는 해였다. 18세에 일본으로 건너와 41세에 이국의 땅에서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자살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는 "죽기 위해 일본에 온 것인가"라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탈북자 중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1997년 신의주에서 이번 탈북 때 사용된 배보다 조금 더 나은 배로 탈출한 2가구 14명에 의한 집단 탈북이었다. 말그대로 보트 피플(해상난민)이었다.
 
그들과는 망명 직후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 정착한 후에도 몇번이고 서울에서 만났다. 이들을 취재하면서 1999년에 '북한 망명 730일 다큐멘터리(쇼각칸 발행)'라는 한 권의 책도 엮어냈다. 
 
이때 많은 탈북자를 취재해 알게 된 점이 있었다. 탈북자에게 있어서 한국은 북한에 비교하면 나은 편이지만, 절대 '천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 여당 의원이 1998년, 1990년 이후 한국에 망명한 탈북자 3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망명자의 수입은 당시 평균 70만 원으로, 일반 셀러리맨 초봉의 반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전체 14%인 43명이 민홍구와 같이 한국에서 범죄를 일으켰던 것으로 밝혀졌다.
1982년 망명해 신용카드 회사에 근무하고 있던 한 군인 출신 탈북자는 금융기관관계자를 납치한 혐의로 체포됐던 적이 있다. 이 군인 출신 탈북자는 경찰 당국에 "한국에서는, 탈북자가 북한에서 범죄를 일으켰기 때문에 망명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분했다"며, 범죄자로 전락한 이유를 밝혔다.
 
한국 사회에 있는 탈북자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이 가져온 탈북자들의 비애, 비극의 실례는 많다.
 
망명자 중에서는 향수에 젖어 북한에 'U턴 망명'을 시도한 경우도 있다. 1994년 9월 한국에 망명했던 탈북자는 망명한 지 1년 반만에 배를 타고 중국으로 밀출국하려다 체포됐다.
이 탈북자는, 3D업종을 포함해 다양한 일에 손을 댔지만, 어느 직업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모와 누나를 북한에 버리고 왔다는 죄책감도 컸고, 이 때문에 결사의 각오로 한국을 탈출하려고 시도했던 것이라고 한다. 아래는 그가 재판에서 눈물을 흘리며 진술한 내용이다.
 
"하루 12시간을 일했지만, 월급은 50만 원이었다. 생활이 될 리가 없었다.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해 왔지만 생활은 이랬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쓸쓸해졌다. 먹기 위해 이렇게 고생하느니 가난하더라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 나았다"
 
그에게는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재판관도 방청객들도 이 탈북자에게 동정을 금치 못했다.
 
이번달에 일어난 탈북사건의 경우, 단신이 아닌 가족 단위의 집단 망명이기 때문에, 고독감과 가족을 북한에 남기고 왔다는 죄악감에 휩싸일 필요는 없지만, 일부러 죽을 각오로 북한을 탈출해 희망의 나라에 망명해왔을 터이니, 무엇이 어찌됐든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한국으로의 망명은 인생의 종착점이 아닌, 새로운 인생을 위한 출발점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신천지에 순응하고 정착할 수 있을지,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을지 여부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남북통일을 위한 리트머스지가 될 것이다.
 
남북간 화해, 통일은 양측간 이질성을 극복하고, 동포로서의 동질성을 회복해야지만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의 한국 내 생활은, 남북 양측에 있어서 장대한 실험이기도 한 것이다.
 
출처 / 제이피뉴스 www.jp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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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9/22 [20:48]  최종편집: ⓒ honaminworl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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