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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향우회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국가 기념일이기 때문에 공관이나 한인회 주관이 더 바람직 하지만
 
호남人월드 기사입력  2013/03/23 [10:53]
미주지역에 호남향우회가 만들어지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1980년 5월의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이라고 미국 로스엔젤레스 지역 호남향우회 초대회장을 엮임한 차종환박사께서 '호남인월드'에 기고를 통해 밝힌 바 있습니다.

때문에 당시 미주지역 호남향우회 활동 중에는 매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에 대한 추모식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광주 민주정신을 계승하는 해외민주화운동의 중심에 호남향우회가 중심에 자리잡게 됐습니다.
 
▲  80년 5월 전남대학교   © 호남人월드
 
1997년 김영삼정부가  5월 18일을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제정함에 따라 한국내에서는 97년 부터 5.18행사를 정부가 주관하게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민주운동 단체들이 오랫 동안 5.18행사를 주관해왔습니다.
 
97년 국가기념일 제정 이후 5·18민주화운동기념일에 개최하는 행사는 크게 중앙정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와 기념행사위원회가 주관하는 관련 행사로 구분됩니다.
 

▲  5월 광주 희생자 가족    ©호남人월드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국립 5·18묘지에서 개최하는 기념식에는 대통령,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3부 및 헌법기관의 주요인사, 국회의원, 장관, 차관급 관료, 5·18민주유공자, 유족, 5·18관련 단체 회원, 각계 대표, 공무원, 시민, 학생이 참석합니다.(이명박 대통령은 재임시 불참하고 국무총리가 참석함)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을 국가가 법정기념일로 정하고 매년 5월 정부차원의 기념식이 열린다는 것은 해외에서도 호남향우회가 5.18기념식을 하는 것 보다는 지역 한인사회 대표성을 가진 한인회나 해당지역 영사관에서 기념식을 주관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지역의 경우 공관과 한인회, 호남향우회 등 여러 한인단체들이 공동으로 5.18기념행사를 하는 곳도 있지만 공관이 없었던 달라스 지역 같은 곳은 오랫동안 호남향우회 주관으로 5.18 기념행사를 해온 곳도 있습니다.(달라스 지역은 2012년 하반기에 휴스턴총영사관 달라스 출장소가 생김)
 
해외공관에서 의식을 치루는 국가기념일은 3.1절이나 8.15광복절 등 소수에 그칩니다. 그나마 중요한 국가 기념일을 챙기는 공관도 있고, 적당하게 넘기는 공관도 있습니다. 현지 여건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2013년 5월이 다가오면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준비하려는 해외지역 호남향우회가 몇 곳있습니다.

결론부터 논하자면 호남향우회는 5.18 기념식과 관련해 단독으로 행사를 준비하는 것 보다는 해당지역 영사관이나 대사관 등 공관과 먼저 의논하는 것이 순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초기 광주 망월동 묘역    © 호남人월드
 
국가기념일이기 때문에 해당지역 광관이 5.18기념식을 주관하는 것이 원칙이고, 또한 호남향우회 보다는 해당 지역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한인회가 5.18기념식을 주관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문제는 해당지역 영사관 등 공관이나  한인회가 5.18 기념식을 주관하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을때는 차선책으로 호남향우회가 5.18기념식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 될 것입니다.
 
공관이나 한인회가 무관심 할 경우에 부득히 호남향우회 주관으로 5.18 기념식을 하게 될 경우에도 해당지역 영사관이나 한인회의 참여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열린자세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  5.18 민주화운동기념일이 제정된 이후 광주 망월동 국립묘역   © 호남人월드
 
호남향우회 단독으로 5.18 기념식을 하더라도 영사관 관계자나 한인회장을 정중하게 초청해서 희생자들에게 헌화 분향하게 하고 기념사를 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뜻입니다.
 
영사관이나 한인회가 5.18 민주화운동기념식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조용하게 제안하는 지혜도 호남향우회의 몫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13년 5월, 전세계 호남향우회에서 5.18기념식에 큰 관심을 갖고 곳곳에서 5월 광주정신이 계승되어 조국의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에 일조하는 지혜로운 호남인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정광일 / 호남인월드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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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23 [10:53]  최종편집: ⓒ honaminworld.kr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배경 광주 13/03/23 [14:22] 수정 삭제
  1961년 5·16군사정변으로 등장한 군사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사망과 함께 붕괴된다. 이를 틈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집권이 가시화되었다. 민중운동 및 반(反)군부 세력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신군부의 집권으로 인해 더욱 후퇴하고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1980년 5월 초에 절정에 이르러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광주에서는 5월 초부터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의 주도로 시국성토대회가 연일 개최되었다. 학생들은 5월 14일부터 광주 도심으로 진출하였고, 시민들과 대규모 가두 정치집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족민주화성회’로 불리던 이러한 집회와 시위는 5월 16일까지 계속되었다.
시위가 확산되어 가자 신군부는 5월 14일부터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집회와 시위를 진압할 계획을 현실화하였고, 17일 오후 7시에 공수부대 투입명령을 내렸다. 신군부는 5월 17일 밤 11시 40분에 ‘비상계엄이 18일 자정을 기해 전국으로 확대되었음’을 발표하는 한편, 전국에서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광주에서도 5월 18일 자정이 다 된 무렵부터 십수 명이 광주 505보안대로 연행되었다. 그리고 제7공수여단은 전남대와 조선대에 계엄군으로 배치되어 학교에 있던 학생 112명을 연행하였으며, 언론사와 방송국, 비롯하여 광주 시내 주요 기관에 제31사단 군인이 투입되었다.
5월 16일에 개최된 집회를 해산하면서 약속한 대로 학생들은 18일 오전에 전남대 정문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전남대에 주둔한 계엄군은 학생들의 해산을 종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첫 충돌이 발생하였다. 계엄군의 진압을 피해 도심으로 진출한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계엄 확대와 계엄군이 자행한 만행을 알렸다. 제7공수여단에 이어 추가로 파병된 제11공수여단은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진압봉을 휘둘렀고, 무차별 연행하였다. 이에 시민과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계엄군에 맞섰고, 도심은 전쟁터로 변해갔다. 제3공수여단이 추가 투입되는 등 계엄군은 계속 늘어났고 발포까지 이루어져 사상자가 급증하였다. 시위대는 계엄군의 만행을 널리 알리고, 무력에 맞서기 위해 전남 지역으로 진출하여 무기를 획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은 광주뿐만 아니라 전남 일원으로 확대되었다. 무기를 획득한 시민들은 이른바 ‘시민군’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5월 21일 시민군은 계엄군을 후퇴시킴으로써 27일까지 ‘민중자치’가 실현되었다. 이 기간 동안 시민군은 광주의 치안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으며, 다수가 도청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
계엄군이 철수한 광주는 5·18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시민학생민주투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해가면서 죽음으로 확보한 성과를 지속시키고자 했다. 이들은 5월 26일까지 매일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개최하여 민주주의의 사수를 위한 광범위한 동의를 구하였다. 또한 ‘투사회보’를 비롯하여 다수의 홍보물이 발간되어 대안언론의 기능을 했다. 시민들은 시민군과 시위대에게 음식물과 생활용품을 기꺼이 제공하였다. 계엄군과 신군부의 지시를 받던 행정권력이 기능을 상실한 기간은 ‘시민들이 각자의 생명과 동료 시위대 그리고 광주시민들의 생명과 완전히 동일시했던 절대공동체가 형성되었던 시기’였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충정작전을 개시하여 전남도청을 다시 점령함으로써 종결되었다. 2001년 12월 18일을 기준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사망 218명, 행방불명자 363명, 상이자 5,088명, 기타 1,520명으로 총 7,200여명에 이른다. 비록 5·18민주화운동은 비극적으로 종결되었으나,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명예회복, 보상, 기념사업을 쟁점으로 한 ‘5월운동’을 통해 계속되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이 제정(1990년 8월 6일)되어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및 기념사업이 이루어졌고,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이 제정(1995년 12월 19일)되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가해자 다수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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